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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하주 작성일07-07-12 23:36 조회1,77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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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천면은 보성 인근에서 지대가 가장 낮은 지역이다. 기온도 인근에 비해 연평균 3℃ 내외로 따뜻해 겨울에 산을 넘어 오면 꽁꽁 얼었던 말이 회천에 와서 풀린다는 말이 있다. 가장 낮은 지역에 위치하다 보니 일림산을 타고 내려온 물이 모두 회천으로 집결한다. 지역 이름이 물이 모인다는 의미의 회천(會泉)인 것도 이 때문이다.
회천의 물은 맛이 독특하다. 달착지근한 맛이 우러나면서도 동시에 약간의 짠 기운이 느껴진다. 회천이 바다를 접하고 있기 때문이다. 200여 년의 시간 동안 회천 율포 땅에 뿌리내린 강하주의 깊은 맛도 그 물에서 비롯된다.
강하주를 만드는 도화자(56)씨는 첫 마디에 물자랑부터 늘여놓았다. "강하주는 보성에서도 여그 회천하고 쩌짝에 전일에서만 맹글았는디 고것이 다 이유가 있제. 두 군디 다 바다가 코 앞인께 물에서 짭짜롬한 맛이 난디 아마 그려서 술맛이 독특할 것이여. 딴 디 물로 백날 술을 빚어봐 이 맛이 나오간디"라고 말했다.

곡주와 소주를 섞어 신청주
우리 전통의 맥을 타고 내려오는 술은 거의가 유순한 곡주다. 지역적 특성에 따라 주로 바다를 인접한 지역에서 독한 소주를 내려 마시기는 했지만 소주도 기실 곡식을 발효시켜 만든다. 때문에 술이 흔하지 않았다. 돈 많은 대가집에서나 만들어 마실 뿐 입에 넣을 보리쌀 한 되빡이 아쉬웠던 일반 사람들에게 제대로 만들어진 술은 사치에 불과했다. 강하주도 회천 인근 여러 집에서 만들어 마시기는 했지만 흔하지 않았다. 농사 꾀나 가진 집에서 집안 대소사나 명절에 빚어 마시는 정도였다.
그러나 술 만드는 비법만은 흔했다. 예전에는 한 집 걸러 한 집은 강하주를 만들 수 있었다. 문제는 밀주단속이었다. 오랜 시간 동안 밀주 단속이 지속되면서 강하주는 생활 속에서 밀려났고, 지금은 회천 전체를 통 털어도 강하주의 비법을 아는 사람이 열을 넘지 않는다.
강하주의 맥을 잇고 있는 도화자씨는 나이 열 여섯에 처음 강하주를 담기 시작해 나이 50을 훌쩍 넘긴 지금도 그 술을 만들고 있다. 물론 술 만드는 비법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을 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빚는 강하주를 어깨 너머로 배웠을 뿐이다.
도씨는 영락없는 촌 아줌마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촌에서 사는 사람이 무슨 선생님이냐며 호칭도 ‘아짐’으로 하라고 신신당부를 했다. 그에게 강하주를 만드는 일은 특별한 무엇이 아니다. 어려서부터 만들어왔고 버릇처럼 그 일을 해오고 있을 뿐이다. 강하주의 어엿한 틀을 잡겠다고 다짐한 것은 아주 근자의 일이다.
3년 전 보성 농업기술센터가 보성의 전통주인 강하주를 복원 상품화하는 사업에 뛰어들었고, 오랫동안 강하주를 빚어왔던 도씨는 자연스럽게 술을 만들 사람으로 지목되었다. 이후 도씨는 없는 돈에 소줏고리부터 사와 틈나는 대로 강하주를 만들었다.
"생전 집이서 하던 대로만 만들었는디 군에서 지원도 해주고 한께 제대로 한 번 해보고 잡드마. 그려서 진도 홍주 만드는 데도 가보고 복분자 술도가도 가보고 했제. 다른 거 없어. 내가 강하주 욕먹이는 일은 없어야 쓸 거 아니여"라고 말했다.
실제로 강하주는 밀주 단속으로 은밀하게 만들어지면서 술이 많이 변질되었다. 강하주의 다른 이름은 '신청주'이다. 제조방법의 특별함으로 인해 붙여진 이름이다. 보통의 민속주가 곡주나 소주 둘 중의 하나로 만들어지데 반해 강하주는 곡주에 소줏고리에 내린 보리술(알콜농도 40% 내외의 소주) 섞어 발효시켜 만든다.
곡주는 예전의 방식 그대로인데 소주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단속을 경계하며 그작저작 급하게 술을 빚어먹다 보니 보리술이 시중에서 판매하는 소주로 대체되었다. 가끔씩 회천 인근의 음식점에서 그렇게 만들어진 강하주를 내놓는데 술맛은 둘째치고 뒤끝이 안 좋다. "막소주를 붓어분께 막걸리에따 소주타분 격으로 완전히 폭탄주가 되야불제. 그란께 그 술 마시고 나면 머리골이 아프다고 난리여"라는 게 도씨의 말이다.
제대로 만들어진 강하주는 아무리 마셔도 뒤탈이 없다. 그 비밀은 보리술을 만드는 과정에 숨어 있다. 도씨는 보리술을 만들 때 삶은 보리알이 낱낱이 흩어질 정도로 몇 번이고 씻는 일을 되풀이한다. 보리의 끈기를 완전히 없애야만 술이 발효가 잘 되고 뒤끝도 깨끗해진다.


발효가 되면 거품이 일어나는 말술


한 여름 무사히 넘기는 술
강하주는 밑술과 덧술로 만들어진 곡주에 다시 보리술을 넣어 긴 시간의 발효를 거치면 완성된다. 먼저 찹쌀과 누룩을 섞어 3일을 두면 밑술이 된다. 덧술은 대추를 고두밥과 같이 쪄서 거기에 용안육, 강활, 계피, 생강을 넣고 밑술과 합쳐 하루의 발효시간이 지나면 완성된다. 고두밥은 반드시 완전히 식은 다음에 밑술과 합쳐야 된다. 온기가 남아있으면 발효과정에서 술이 상하기 쉽다.
보리술은 삶은 보리에 누룩을 넣고 일주일 정도 발효시킨 다음 소줏고리에 넣고 알콜농도 45% 내외의 술을 내리면 완성된다. 보리술과 곡주를 섞어 다시 술독을 완전히 밀봉한 상태에서 보름 정도의 발효를 거치면 알콩농도 30% 정도의 강하주가 완성된다.


누룩을 만드는 모습.도씨는 우리밀만을 사용해 누룩을 만든다.

곡주는 소주에 비해 마시기는 편하나 상하기 쉬워 보존 기간이 짧다. 봄에 만든 술이 여름을 넘기는 경우는 거의 없고, 술에 능숙한 사람도 되도록 여름에는 곡주 담는 일을 회피한다. 그러나 강하주는 곡주와 소주를 합쳐 봄에 담근 술을 가을까지 두어도 변하지 않아 한 여름을 무사히 넘기는 술이다. 용안육과 강활, 대추, 생강, 계피 등이 들어가 사람이 마시면 한 여름을 무사히 보낼 수 있다는 약주의 의미도 포함되어 있다.
강하주는 노르스름한 암갈색을 띄며 톡 쏘는 듯한 맛이 특징이다. 생강의 매콤한 맛과 광활의 쓴 맛, 약간 달착지근한 용안육의 맛이 어우러져 독특한 맛을 낸다. 처음 입안에 넣었을 때는 싸한 기운이 돌다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갈 때는 어느새 부드럽게 변한다. 더구나 강하주는 술의 향이 진해 마신 이후에도 입안에 맛이 오래 남아 술맛을 음미할 수 있다.
도씨는 "강하주를 마실 적에는 세 가지 맛을 동시에 봐야 쓴디 코로는 술향기를 마시고, 눈으로는 빛깔을 마시고, 목 넘김을 할 때는 감미로움을 마신다"고 말했다. 실제로 강하주는 눈 코 입을 모두 만족시킬 만큼 맛이 깊었다.
평생 강하주를 만들었지만 정작 도씨는 전혀 술을 마시지 못한다. "내가 이날 평생 술을 마셔본 역사가 없는 사람이여"라는 게 도씨의 말이다. 술을 만들 때 술맛을 어찌 볼까 의문이 생길 법도 하지만 그런 의문은 접어둬도 될 듯 하다. 도씨는 손가락으로 한 번 술을 찍어서 맛을 보는 것과 술 익는 냄새로 술맛을 안다.
"술을 담그다 보문 술이 잘 될 때도 있고 술이 안 될 때도 있을 거 아니여. 술 내릴 때 냄새만 맡으문 금방 알아. 술이 잘되면 내릴 때 꼬소롬한 냄새가 나는디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 고 냄새가 나문 술맛은 틀림없제"라는 게 도씨는 말이다.
강하주는 지금 시판을 기다리고 있고, 도씨는 제대로 된 술맛을 만들어내기 위해 술과 붙어산다. 늦어도 내년이면 누구나 강하주의 200년 깊은 맛을 느낄 수 있을 듯 하다. 이제 기다릴 일만 남은 셈이다.
정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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